전체 글392 생활습관의학 (만성질환, 수명 연장, 유전적 한계) 마흔을 넘기던 해, 저는 식단과 운동만으로 수명을 십 년 이상 늘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생활습관의학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구원처럼 느껴졌고, 저는 제 일상을 엄격한 규율로 옭아맸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정기 검진에서 한 방 맞았습니다. "식단과 운동만으로는 안 됩니다. 유전적 영향이 큽니다." 그 한마디가 제 신념의 균열을 만들었고, 오히려 더 깊은 이해로 이어졌습니다.습관을 신봉하던 시절의 이야기솔직히 저는 그때 꽤 오만했습니다. 초가공식품을 식탁에서 완전히 몰아냈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밤길을 뛰었습니다. 지중해식 식단, 그러니까 식이섬유·항산화 물질·식물성 단백질 중심의 식단으로 끼니를 챙겼고, 정해진 시각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 약속도 미뤘습니다. '내 몸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2026. 8. 19. 회충 감염 (장폐색, 위생 가설, 면역 공진화) 솔직히 저는 기생충을 '이미 끝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봄가을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구충제를 삼기던 풍경이 그저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전 남동아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소장을 가득 채운 200여 마리의 회충 덩어리를 직접 목격한 뒤 그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회충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습니다.소장을 막아버린 타래 — 그날 수술실에서 본 것의료 봉사단과 함께 찾아간 작은 마을 보건소에서, 저는 여덟 살 남짓의 아이를 만났습니다. 며칠째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고, 배는 터질 듯 부풀어 있었으며, 피부는 잿빛으로 창백했습니다. 초음파 화면을 살피던 현지 의료진의 손이 그 자리에서 굳었습니다.화면이 보여준 것은 장기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소장 내부를 꽉 채운 채 .. 2026. 8. 19. 카페 초계국수 (혈당 스파이크, 나트륨 과부하, 위점막 자극) 차가운 육수 한 컵에 닭가슴살까지 들어있으니 건강한 한 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두 주쯤 지났을 때 속이 쓰리고 가슴 아래가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들은 말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카페에서 파는 컵 초계국수, 닭고기만 보고 방심했다가는 혈당 스파이크와 나트륨 과부하, 위점막 자극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차가울수록 더 달고 짜다 — 혈당 스파이크의 구조저는 처음 컵 초계국수를 손에 쥐었을 때 '6,500원에 단백질까지'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사람의 미각 세포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단맛과 짠맛에 대한 감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른바 온도-미각 둔감화 현상인데, 쉽게 말해 음식이 차가울수록 같은 농도의 당분과 나트륨을 훨씬 약하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얼.. 2026. 8. 18. 암 환자 고기 섭취 (IARC 분류, 근감소증, 수육 조리법) 솔직히 저는 어머니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날, 냉장고 안 고기를 전부 버리는 게 옳은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붉은 고기가 발암 물질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고, 그 공포가 판단력을 완전히 가려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어머니의 몸을 더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IARC 2A군 분류, 제가 오해했던 진짜 의미어머니 진단 직후 제가 가장 먼저 검색한 것은 "소고기 발암"이었습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적색육을 발암 추정 물질인 '2A군'으로 분류했다는 내용이 쏟아졌고, 저는 그 헤드라인 하나만 붙들고 고기를 독극물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나중에 제대로 찾아보니, IARC의 분류 체계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2A군이.. 2026. 8. 18. 과일 주스의 진실 (과당 대사, 혈관 건강, 생과일 섭취) 냉장고에서 꺼낸 100% 착즙 주스 한 잔이 탄산음료보다 건강하다는 믿음, 저도 몇 년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30대 중반 건강검진에서 경계성 고혈압과 초기 비알코올성 지방간 소견을 받은 날,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이 "과일 주스 자주 드시나요?"였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제 식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유리병 속 '건강'이 제 간을 조용히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여름이면 저는 냉장고 문을 열고 '100% 착즙', '무설탕 천연 과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유리병을 꺼내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탄산음료 대신 선택한 거니까 당연히 건강한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꽤 오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그런데 검진 결과를 받아 들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때, 제 확신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체중도.. 2026. 8. 17. 거대지증 (진행성 유형, 체세포 돌연변이, 분자표적치료) 아이가 네 살이 되던 가을, 정형외과 진료실 바닥에 양쪽 크기가 전혀 다른 신발 두 켤레를 올려놓으며 저는 처음으로 이 병의 이름을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거대지증(Macrodactyly). 신생아 5만~20만 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선천성 희귀 기형입니다. 일반적으로 "크기만 좀 다를 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4년을 함께 버텨오며 직접 확인한 이 병의 실체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문제였습니다.진행성 유형이라는 것,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출생 직후 왼발 둘째와 셋째 발가락이 오른발보다 조금 길고 두껍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크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그런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왼발 발가락들은 전혀 다.. 2026. 8. 1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