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52 흉수검사 (이뇨제 왜곡, 라이트 기준, 오진 위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성태 형이 가슴에 물이 찼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병원에서 액체를 뽑아 분석하면 원인이 금방 밝혀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곁에서 지켜본 과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수치는 뚜렷하게 나왔는데, 그 수치가 오히려 형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가슴에 물이 찬다는 것, 흉막 삼출증의 실체흉막 삼출증(Pleural Effusion)이라는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때 형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흉막 삼출증이란, 폐를 감싸는 흉강이라는 공간에 액체가 비정상적으로 고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래 흉강 안에는 5~15mL 정도의 소량 체액이 있어 숨 쉴 때마다 폐와 갈비뼈가 부딪히지 않도록 윤활제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어떤 원인으로 .. 2026. 6. 22. 흉선암 (완전절제, 면역파산, 정밀면역치료) 흉선암은 인구 100만 명당 고작 한두 명에게 발생하는 희귀암입니다. 저는 이 숫자가 얼마나 무의미한 위안인지, 형의 병상 곁에 앉아 처음 실감했습니다. 칼로 완벽하게 도려냈다고 했는데, 형은 왜 그 뒤로도 숨을 쉬지 못했을까. 그 질문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완전절제(R0)라는 선언이 감춘 것들흉선암 치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완전절제, 의학 용어로는 R0 절제(R0 Resection)입니다. R0 절제란 수술 후 절제 단면에 암세포가 육안 및 현미경 검사상 전혀 남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눈으로 보이는 암 덩어리를 깨끗이 다 잘라냈다"는 선언입니다. 제가 아는 민우 형의 주치의도 수술실을 나오며 정확히 그 말을 했습니다. "주변 지방 조직까지 단 1밀리미.. 2026. 6. 22. 발진티푸스 (브릴-진서병, 유전체 축소, 잠복 감염) "국내 발생 제로." 의학도 시절 저는 이 문장 하나로 발진티푸스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임상 현장에서 만난 한 노인 환자가 그 확신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몸니 한 마리 없는 깨끗한 아파트에서, 수십 년 전 앓았던 발진티푸스가 그의 몸 안에서 스스로 부활한 것입니다.교과서 속 박제된 공포, 그 이면의학도 시절 도서관 서가 깊숙이 꽂혀 있던 낡은 감염병학 교과서를 꺼내 들었을 때, 발진티푸스 항목 위에는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습니다. 리케치아 프로와제키이(Rickettsia prowazekii)라는 긴 라틴어 이름 옆에는 흑백 사진 속 참호가 있었고, 그 안의 사람들은 14세기 페스트화보 속 인물들처럼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 속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국내 발생 건수 제로." .. 2026. 6. 21. 세기관지염 (천명음, 대증요법, 기도 리모델링) 아이가 처음 밤새 쌕쌕거리는 소리를 냈을 때, 저는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갈비뼈 사이가 안쪽으로 꺼져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세기관지염은 2세 미만 영유아에게 겨울철 입원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특별한 약이 없으니 지켜보면 됩니다"라는 말 뒤에 감춰진 것들을 직접 겪고 나서, 이 병을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새벽 숨소리가 심상치 않을 때 — 천명음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아이를 키우다 보면 기침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지는 시기가 옵니다. 저도 처음엔 "좀 지나면 낫겠지" 하고 넘겼는데, 새벽 두 시쯤 아이의 숨소리에서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바로 천명음(Wheezing)입니다. 천명음이란 공기가 좁아진 .. 2026. 6. 21. 전해질 검사 (수치 착시, 칼륨 심연, 삼투압 역설) 혈액 속 칼륨의 98%는 세포 안에 갇혀 있습니다. 매일 채혈해서 확인하는 수치는 그 나머지 2%에 불과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이 사실을 처음 체감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검사지 위 숫자가 '정상'을 가리키는데 환자가 위태로워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나서야, 전해질 수치를 읽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검사지가 보여주지 않는 것들 — 수치 착시의 배경일반적으로 전해질 검사는 신체 수분 상태와 이온 균형을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륨(Na⁺), 칼륨(K⁺), 염소(Cl⁻), 중탄산염(HCO₃⁻) 네 가지 이온의 농도를 측정해서 몸의 균형을 판단한다는 논리는 직관적이고 명쾌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수치는 생각보다 훨씬 자주 거짓말을 합니다. 우선 채혈 .. 2026. 6. 20. 입덧 (진화론적 신화, 임신 오조, 임상적 주권) 새벽 3시에 화장실 타일 바닥에 이마를 붙이고 앉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임신 6주차, 멸균된 생수 한 모금을 그대로 변기 속에 쏟아낸 그날 밤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자연의 보호막'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포장지였는지를요.진화론적 신화: "보호 기전"이라는 말이 숨긴 것들입덧을 두고 흔히 "몸이 태아를 지키기 위해 유해한 음식을 밀어내는 진화론적 적응"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도 임신 전까지는 그 설명을 꽤 그럴싸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이 설명에는 결정적인 구멍이 있습니다. 제가 그날 새벽 못 삼킨 것은 상한 음식도, 유해한 자극물도 아니었습니다. 정수기에서 받은 차가운 물 한 컵이었습니다. 입덧이 정말 정교한 독소 탐지 시스템이라면, 흰.. 2026. 6. 20. 이전 1 ··· 5 6 7 8 9 10 11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