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하지정맥류를 오랫동안 '다리 혈관이 튀어나오는 미용 문제'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서서 일한 가까운 지인이 판막 역류 진단을 받는 걸 곁에서 지켜보고 나서야, 이 질환이 단순히 다리 표면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다리 안쪽에서 이미 압력이 무너지고 있었던 겁니다.
다리 혈관 문제가 아니라 '배 안의 압력' 문제였습니다
하지정맥류를 이야기할 때 흔히 "오래 서 있어서 생긴다"는 설명이 먼저 나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불완전한 설명입니다. 정맥 순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다리는 전신 혈액 흐름에서 가장 하류에 해당합니다. 그 상류, 즉 골반과 복부의 압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어야 비로소 다리 정맥도 원활하게 흐를 수 있습니다.
복압(Intra-abdominal Pressur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복압이란 복강 내부에서 장기들이 만들어내는 압력을 의미하는데, 이 압력이 만성적으로 높아지면 다리에서 심장 쪽으로 올라가려는 혈액이 골반 부위에서 막히게 됩니다. 만성 변비로 항상 배에 힘을 주는 습관이 있거나, 복부 비만으로 장기들이 아래쪽 골반 혈관을 짓누르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임신 중 하지정맥류가 급격히 악화되는 이유도 호르몬 영향만이 아니라, 자궁이 커지면서 골반 내 굵은 정맥을 직접 압박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출처: NIH StatPearls, Varicose Veins).
제가 지켜본 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장에서 언제나 긴장한 채 배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자세가 복압을 높이고, 바쁜 업무 탓에 하루 종일 물을 거의 마시지 못해 혈액 점도까지 높아져 있었습니다. 다리 혈관만 고치겠다고 덤볐다면 근본 원인은 그대로였을 겁니다. 소화기 습관과 호흡 방식, 코어 근육의 긴장 상태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이후부터입니다.
- 만성 변비·복부 비만 → 복압 상승 → 골반 정맥 압박 → 다리 혈액 정체
- 임신 중 자궁 비대 → 골반 내 정맥 직접 압박 → 하지정맥류 악화
- 지속적인 배 힘주기 자세 → 복압 만성화 → 다리 정맥 고혈압 유발
역류하는 혈관을 막으면 끝날까요 — 치료의 역설
정맥 내 폐쇄술(Endovenous Ablation)이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늘어나서 역류가 생긴 정맥 안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고 레이저나 고주파 열에너지로 혈관 벽을 접착시켜 막아버리는 방식입니다. 고장 난 혈관을 차단하면 혈액이 건강한 다른 경로로 우회하기 때문에 증상이 빠르게 나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법에는 생각보다 깊은 이면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정맥 체계는 그물망처럼 얽혀 있어서, 큰 혈관 하나를 막으면 그 혈관이 나르던 혈액의 부담이 주변 작은 혈관들로 분산됩니다. 유전적으로 정맥 탄력 자체가 약한 체질이라면, 주변의 멀쩡하던 미세혈관들이 이 추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늘어날 수 있습니다. 수술 후 몇 년이 지나 수술 부위 주변에 거미줄 모양의 실핏줄인 모세혈관 확장증(Telangiectasia)이 더 넓게 번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모세혈관 확장증이란 진피 층의 미세 혈관이 지속적인 압력에 의해 영구적으로 늘어나 피부 표면에 붉은 거미줄 패턴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말합니다(출처: UpToDate, Lower Extremity Chronic Venous Disease).
"역류하는 혈관은 지져버리면 그만"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환자 전체의 정맥 지도(Venous Mapping)를 먼저 그려야 합니다. 여기서 정맥 지도란 초음파 검사로 다리 전체의 혈관 구조와 혈류 방향을 도식화해, 어느 혈관을 막았을 때 주변 혈관이 받는 압력 부하가 어느 정도인지를 예측하는 과정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혈관을 제거하는 것보다 압박 요법으로 기존 혈관의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걷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 발목 관절이 핵심입니다
하지정맥류 예방에 걷기를 추천하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듣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일 만 보씩 걷는데도 다리가 점점 더 붓는다"는 분들이 실제로 꽤 많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결국 문제는 걷는 양이 아니라 발목 관절이 얼마나 제대로 움직이느냐에 있었습니다.
종아리 근육 펌프(Calf Muscle Pump)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종아리 근육 펌프란 걸을 때 종아리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다리에 고인 혈액을 심장 쪽으로 짜 올리는 보조 순환 기전을 말합니다. 이 펌프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고, 발바닥을 거쳐 발가락 끝으로 땅을 차는 정상적인 보행 과정에서 발목이 위아래로 충분히 움직여야 합니다. 발목 관절의 이 움직임이 종아리 근육을 길게 늘였다 꽉 짜주는 펌프 손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굽이 높은 구두를 오래 신으면 발목 관절이 뻣뻣하게 굳는다는 겁니다. 제가 직접 관찰해봤는데, 지인이 하루 종일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나면 저녁에 발목을 위아래로 꺾는 동작 자체가 잘 안 됐습니다. 그 상태에서 아무리 많이 걸어도 종아리는 제대로 수축하지 못합니다. 혈액이 다리 아래쪽에 갇혀 오히려 쥐가 나고 더 부어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인이 매일 오후 한산한 시간에 구두를 벗고 발가락을 몸 쪽으로 바짝 당겨 종아리 근육을 팽팽하게 늘려주는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몇 분이었지만, 굳어있던 발목이 풀리면서 다리 전체의 혈액 순환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는 습관과 이 발목 스트레칭을 병행한 뒤부터 야간 경련성 통증, 즉 밤마다 종아리 근육이 뒤틀리는 증상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리에 혈관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하지정맥류가 아닌 건가요?
A. 꼭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혈관이 보이지 않아도 다리 안쪽 깊은 정맥에서 이미 판막 역류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밤마다 종아리에 쥐가 나거나, 오후만 되면 다리가 무겁고 붓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정맥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눈에 보이는 혈관이 없다고 안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더 늦은 진단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Q. 레이저 시술 후에 왜 주변에 실핏줄이 더 생기는 경우가 있나요?
A. 막힌 혈관이 담당하던 혈액 부담이 주변 미세 혈관들로 분산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유전적으로 정맥 탄력이 약한 경우 이런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술 전에 정맥 지도 검사를 통해 혈관 전체의 압력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저도 그 시각이 맞다고 봅니다.
Q. 압박스타킹은 아무 제품이나 사도 되나요?
A. 시중에서 파는 일반 압박 양말과 의료용 압박스타킹은 다릅니다. 의료용 제품은 발목, 종아리, 허벅지로 올라갈수록 압력이 단계적으로 낮아지도록 설계되어 혈액을 심장 쪽으로 밀어 올리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본인의 다리 둘레와 정맥류 위치에 맞지 않는 제품을 임의로 착용하면 오히려 혈액 순환을 방해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선택해야 합니다.
Q. 변비나 복부 비만도 하지정맥류와 관련이 있나요?
A. 네, 연관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만성 변비로 배에 힘을 자주 주거나 복부 비만으로 장기들이 골반 혈관을 지속적으로 누르면 복압이 올라가고, 이것이 다리 정맥의 혈액 정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리 혈관만 치료하고 이런 생활 요인을 방치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전신적인 압력 환경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하지정맥류를 제대로 다루려면 다리 혈관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 곁에서 지켜보며 배운 가장 큰 교훈입니다. 복압을 높이는 생활 습관을 바꾸고, 굳은 발목 관절의 유연성을 먼저 회복시키는 것이 어떤 시술보다 앞서야 할 수 있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역류하는 혈관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정맥 구조와 압력 흐름까지 함께 검토해 줄 수 있는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다리가 무겁고 저린 신호를 단순 피로로 넘기지 마시고, 몸 전체의 순환이 어디서 막히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발목 스트레칭 한 가지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는 직접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