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인 <하나 그리고 둘>은 3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한 가족의 일상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구조를 통해 인생의 거대한 순환을 담아냅니다. 하지만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면서도 차마 보지 못하는 삶의 이면들입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나 자신인 '하나'와 타인인 '둘'이 만나 형성하는 관계의 복잡함과 그 속에서 중년이 느끼는 고독,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신비로움을 차분하게 조명합니다.
인생이라는 흐름 속에서 마주하는 선택과 우연의 변주곡
인생을 하나의 커다란 도화지라고 한다면, <하나 그리고 둘>은 그 도화지 위에 그려진 수많은 점과 선들이 어떻게 하나의 무늬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거창한 영웅담이나 파괴적인 비극을 쫓는 대신,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겪는 사소한 흔들림에 주목합니다. 어린 소년 양양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우리가 스스로 볼 수 없는 진실을 탐구하고, 중년의 아버지는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만나며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인생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우연이 겹쳐진 다층적인 그물망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영화는 인생에 명확한 정답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직하게 읊조립니다. 극 중 인물들이 내린 결정은 때로 후회를 남기고, 때로는 뜻밖의 평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합쳐져 한 인간의 고유한 역사가 됩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관객에게 인생을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창문을 통해 비치는 도시의 불빛처럼, 멀리서 인물들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속에 담긴 슬픔과 기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합니다. 인생이란 결국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까지도 껴안아야 하는 과정임을 영화는 어린 양양의 입을 빌려 아름답게 전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며,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삶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중년공감을 자아내는 서사 속 어른의 책임과 눈물들
중년공감을 이끌어내는 이 영화의 핵심 동력은 가장 NJ의 지치고 무거운 어깨에서 나옵니다. 그는 직장에서는 신뢰받는 동료이자 집에서는 든든한 가장이지만, 내면은 말 못 할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장모님과 종교에 귀의해 집을 떠난 아내 사이에서, NJ는 무너져가는 일상을 묵묵히 지탱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중년의 모습과 거울처럼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삶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책임이라는 무게 때문에 멈출 수 없는 어른들의 서글픈 초상인 셈입니다. 영화가 중년의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지점은 NJ가 일본에서 옛 연인을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수십 년 전의 감정을 꺼내어 보지만, 결국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는 중년이 되어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삶의 체념'이자 동시에 '수용'의 과정입니다. 후회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후회조차 인생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NJ의 표정은, 화려한 성공보다 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모든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옆에 둔 채 묵묵히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중년의 흔들림을 나약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 흔들림이야말로 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NJ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아버지, 혹은 나 자신의 고독을 발견하고 깊은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대만 사회의 현실적 풍경이 비추는 개인의 고독과 현대성
대만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1990년대 후반 타이베이의 도시 풍경은 급격한 경제 발전 뒤에 숨겨진 개인의 소외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유리창에 비치는 도시의 번잡한 불빛들과 무미건조한 사무실의 풍경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대만 사회가 겪고 있는 유교적 가족주의와 서구적 개인주의의 충돌은 NJ 가족의 갈등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의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 부모 세대와 새로운 자유를 갈망하는 자녀 세대 사이에서 겉도는 중년의 위치는 대만 현대사의 부침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영화는 대만의 도시적 정서를 차갑게 묘사하는 듯하면서도, 그 공간을 채우는 소소한 일상의 소리들을 통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빗소리, 차 가동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회색빛 도시를 인간적인 온기가 머무는 장소로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연출은 대만이라는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생 영화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사회 시스템은 우리를 번호표를 든 구직자나 소비자로 대할지 모르지만, 에드워드 양의 카메라는 그 시스템 안에서도 끊임없이 사랑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발견해 냅니다. 대만의 풍경을 통해 우리는 결국 어디에 살든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고독과 사랑의 열망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족의 연대기를 통해 동시대 대만의 공기를 기록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고향 같은 인생의 보편적 진실을 길어 올린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