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유두가 짓무르고 각질이 일어나는 증상을 보고 그냥 피부염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몇 주째 연고를 바르면서 "곧 낫겠지"라고 했을 때도 별다른 의심을 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유방암이었습니다. 유방 파제트병(Paget's disease)은 전체 유방암의 약 1~4%에서만 나타나는 드문 형태지만, 초기 증상이 흔한 습진과 거의 구별이 안 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주의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습진인 줄 알았다가 뒤통수 맞는 이유 — 파제트 세포의 정체
제가 이 병을 처음 제대로 인식하게 된 건 지인이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고 나서였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유두 표피 안에 거대하고 창백한 세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파제트 세포(Paget cells)'였습니다. 여기서 파제트 세포란 유방 내부의 유관(젖이 이동하는 관)에서 발생한 암세포가 유관을 타고 위쪽으로 이동해 유두와 유륜의 표피층에 안착한 악성 세포를 말합니다. 이 세포들이 피부 장벽을 안에서부터 허물기 때문에 바깥에서 연고를 아무리 발라도 나을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유방 파제트병이라는 명칭은 19세기 영국의 병리학자 제임스 파제트(James Paget)가 유두의 만성적 습진성 변화와 유방암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보고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참고로 '파제트병'이라는 단어는 골 대사 이상을 뜻하는 '골 파제트병'이나 생식기 주변에 생기는 '유방 외 파제트병'에도 쓰이므로, 유방에서 발생한 경우와 명확히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모르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엉뚱한 정보를 먼저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병태생리는 단순합니다. 유관 안에서 시작된 암세포—주로 상피내암(DCIS) 또는 침윤성 유관암—가 유관을 통해 위로 이동하고, 유두 표피에 자리 잡아 증식하면서 염증과 궤양 반응을 일으킵니다. 유두 표면의 변화는 결국 유방 깊은 곳에 도사린 암의 신호입니다. 표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파제트 세포: 유관에서 유두 표피로 이동한 악성 암세포
- 유관(milk duct): 유즙이 이동하는 관으로, 암세포 이동 경로가 됨
- 상피내암(DCIS): 암세포가 유관 안에만 머물러 있는 초기 단계의 유방암
- 동반 암종: 파제트병 진단 환자의 상당수에서 유방 심부에 별도 암종이 함께 발견됨
습진과 구별하는 법 — 증상과 진단의 결정적 차이
파제트병의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유두와 유륜 부위의 가려움증, 홍반, 인설(피부 각질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인설이란 피부 표면이 비늘처럼 벗겨지는 상태를 말하는데, 일반적인 건성 피부염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초기에 구별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유두 표면이 딱딱하게 굳거나 궤양이 생기고, 피가 섞인 진물이 나오거나 유두 근처 피부가 쩍 갈라지기도 합니다.
저도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수유 후유증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 일반인 입장에서 이걸 암이라고 의심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수 주간 피부과 연고를 사용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거나, 한쪽 유방에만 병변이 국한되어 있다면 파제트병의 가능성을 반드시 열어두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피부염은 양측 또는 여러 부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연고에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진단을 위해서는 유두·유륜의 병변 피부를 소량 채취하는 '펀치 조직검사(punch biopsy)'를 일차적으로 시행합니다. 펀치 조직검사란 작은 원형 칼날로 병변 부위 피부를 2~4mm 정도 떼어내어 현미경으로 세포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조직학적으로 파제트 세포가 확인되면 유방 내부 암종의 범위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을 추가 시행합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파제트병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유방 심부에 동반 암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어, 정밀 영상 검사를 건너뛰는 것은 위험한 선택입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전절제냐 보존술이냐 — 달라진 치료 선택의 현실
제 지인이 진단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두려워한 건 "가슴을 다 잘라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유방 파제트병이라고 하면 무조건 유방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방 전절제술이란 유방 조직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로, 과거에는 암세포가 유관을 타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가능성 때문에 이 방식이 표준 치료로 통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임상 연구들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영상 검사에서 유방 심부에 다발성 암종이 없고 유두·유륜 부위에만 병변이 국한된 조기 단계라면, 유두-유륜 복합체와 암 침윤 범위를 정밀하게 도려내는 '유방 부분절제술(유방보존술)'을 시행한 뒤 고선량 방사선 치료를 추가하는 방식도 유방 전절제술과 대등한 치료 성적을 낸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알고 나서야 지인도 수술을 앞두고 조금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는 유방 파제트병의 수술 범위 결정 시 MRI 등 정밀 영상 결과를 기반으로 다학제 팀이 함께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결국 "어떤 수술을 받느냐"는 암의 위치와 범위,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파제트병이라는 진단 하나만으로 전절제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 유방 전절제술: 유방 조직 전체 제거, 광범위 침윤이 의심될 때 선택
- 유방 부분절제술(유방보존술): 암 침윤 범위만 절제 + 방사선 치료 병행, 조기 국한 병변에 적용
- 방사선 치료: 수술 후 잔존 미세 암세포 사멸 목적으로 부분절제술과 세트로 시행
- 수술 범위 결정 기준: MRI, PET-CT 영상 결과 + 다학제 팀 협의
치료 이후가 더 긴 싸움 — 부작용, 전이, 그리고 조기검진
수술이 끝난 게 끝이 아니라는 걸 옆에서 보면서 실감했습니다. 겨드랑이 림프절을 일부 절제한 이후 팔에 림프액이 고여 붓는 '림프부종(lymphedema)'이 지인을 가장 오래 괴롭혔습니다. 여기서 림프부종이란 림프절 제거로 인해 림프액의 순환 경로가 막혀 조직에 액체가 고이는 상태를 말하는데, 압박 붕대와 림프 드레나지 마사지를 꾸준히 해야 하는 장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팔 마사지를 도와주던 날들이 아직도 선합니다.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으로 확인되어 항호르몬제인 타목시펜(tamoxifen)을 복용하게 되었는데, 이게 예상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타목시펜이란 에스트로겐이 암세포에 작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항호르몬 치료제로, 폐경 전 여성에게 주로 사용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굴이 화끈거리는 안면 홍조, 불규칙한 생리, 그리고 이유 모를 감정 기복이 복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암보다 약 부작용이 더 힘들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전신 항암화학요법을 병행하는 경우에는 탈모, 오심, 구토, 백혈구 감소증, 혈소판 감소증, 조기 폐경 등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혈구 감소증이란 면역 세포가 줄어들어 세균·바이러스 감염에 쉽게 노출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 시기에는 감염 예방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유방 파제트병이 침윤성으로 진행된 경우 전이 위험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유방암 세포가 원격 전이할 때 가장 먼저 도달하는 부위는 뼈이고, 이어서 폐, 간, 중추신경계(뇌) 순입니다. 이 때문에 치료 종료 후에도 최소 5년, 길게는 10년 이상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이어가야 합니다.
예방과 조기 발견 측면에서는 국가 암검진 프로그램을 반드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만 40세 이상 여성은 1~2년 간격으로 유방촬영술과 의사의 임상 진찰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매달 자가검진도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험 요인으로는 비만, 음주, 유방암 가족력, 이른 초경, 늦은 폐경, 폐경 후 장기 호르몬 대체 요법, 모유 수유 경험 없음 등이 있으며, 이 중 해당 항목이 여러 개라면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지인의 유두 습진이 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저는 유두 주변의 피부 변화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연고를 발라도 한쪽 유두에만 나타나는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피부과보다 유방외과를 먼저 찾아가는 게 맞습니다. 유방 파제트병은 드물고, 겉보기엔 평범한 피부 트러블처럼 보이지만, 놓치면 대가가 너무 큽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 주변에도 비슷한 증상을 오래 방치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오늘 병원 예약을 권유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