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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부 속 식민주의, 죄책감, 금지된 사랑

by insight392766 2026. 1. 18.

영화 타부 포스터

 

미겔 고메스 감독의 <타부>는 식민주의라는 거대한 역사의 파고가 개인의 삶과 기억 속에 어떤 무늬로 남겨졌는지를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지된 사랑과 그로 인해 파생된 죄책감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역사적 부채를 조용히 응시하게 만듭니다. 흑백의 영상미와 정교한 소리의 사용을 통해 현대 유럽 예술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의 불완전함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식민주의 그림자와 유럽 예술영화의 시선

미겔 고메스 감독의 <타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정밀한 흑백의 질감입니다. 이 영화에서 식민주의는 교과서적인 설명이나 날 선 비판의 언어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은 인물들의 삶 속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으며, 그들의 기억과 회상 속에서만 조용히 움직이는 그림자로 존재합니다. 영화의 전반부가 현대 리스본의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과거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이국적인 파라다이스가 아닙니다. 감독은 식민지를 낭만화하거나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유럽인들의 시선과 그들이 선택한 침묵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 위에 펼쳐놓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침묵이 주는 무게에 압도되었습니다. 극 중 인물들이 겪는 권태로운 일상이 사실은 이름 모를 타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식민지라는 비정상적인 권력 구조 위에서 일상을 영위하지만, 그 구조적 모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유럽 예술영화가 지닌 특유의 성찰적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식민주의를 직접적인 고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무엇을 보지 않기로 선택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불편함을 자아내는 방식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그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정작 중요한 진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이고 주관적입니다. <타부>는 바로 그 선택적 기억의 틈새를 파고듭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은 인물들의 배경으로 소비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배경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지탱하던 권력의 기반이었음을 영화는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식민주의는 하나의 종결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끝나지 않은 감정의 잔재로 묘사됩니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미학적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의 과오를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대신, 개인의 내밀한 시선을 통해 그 역사가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고 규정하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리스본의 흐린 하늘이 잊히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이 바로 외면된 역사의 흔적이 유령처럼 떠도는 장소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으로 재구성된 기억의 서사 구조

영화 <타부>의 후반부는 한 남자의 회상으로 구성됩니다. 이 구조 자체가 마치 오랜 시간 가슴속에 품어온 죄책감을 고백하는 성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처절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죄책감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인물들은 결코 울부짖거나 자신의 잘못을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평범한 일상의 나열 속에서, 그들이 놓쳐버린 도덕적 순간들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저는 이러한 방식이 식민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 훨씬 더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라는 배경은 개인의 욕망이 가장 극대화되는 장소인 동시에, 도덕적 해이가 가장 쉽게 허용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이 오로지 개인적인 열정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사랑과 모험이 가능했던 토대 자체가 원주민들의 희생과 착취 위에 세워진 것임을 넌지시 암시합니다. 죄책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이 누렸던 모든 안온함과 낭만이 사실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대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억은 더 이상 아름다운 안식처가 되지 못합니다. <타부>에서 죄책감은 특정한 범죄 행위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았던 시선의 방조로부터 기인합니다. 영화를 보며 저 역시 삶의 어느 순간, 누군가의 아픔을 모른 척하며 나의 행복만을 챙겼던 비겁한 기억들이 떠올라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미겔 고메스 감독은 무성영화적 연출을 빌려와 이 죄책감의 정서를 극대화합니다. 대사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나뭇잎의 흔들림, 물소리, 그리고 인물들의 정적인 표정은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이미지의 공간을 채울 때, 관객은 인물들이 느꼈을 내면의 균열을 더욱 가깝게 체감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세월이 흐른 뒤 늙어버린 주인공의 모습과 젊은 시절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교차될 때였습니다. 그 간극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시간의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물 위를 떠다니는 것은 결국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뿐입니다. 이 영화는 죄책감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평생토록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는지를 묵묵히 보여줄 뿐입니다.

금지된 사랑이 상징하는 침묵과 욕망

<타부>를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정서는 단연 금지된 사랑입니다. 두 남녀의 관계는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관을 저버린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흔한 통속극의 문법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사랑 그 자체의 뜨거움보다는 사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서늘한 침묵과 상실감에 더 깊은 관심을 둡니다. 이 금지된 사랑은 단순한 개인적 비밀을 넘어, 당시 식민지 사회가 감추고 싶어 했던 역사적 진실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사랑이 숨겨져야만 했던 것처럼, 식민 지배의 폭력성과 부조리 또한 화려한 사교계의 웃음 뒤로 철저히 은폐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 속의 사랑이 마치 식민지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유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뜨거웠지만, 그 열기가 향하는 곳은 현실이 아닌 환상에 가까웠습니다. 금지된 사랑이 깊어질수록 인물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고립되고,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비극에는 점점 더 무감각해집니다. 욕망은 기억 속에서 미화되고 왜곡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남겨진 것은 그 왜곡된 기억이 만들어낸 무거운 마음의 짐입니다. 무성영화적 연출은 이러한 감정의 결을 아주 섬세하게 잡아냅니다. 인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배경음과 내레이션만이 흐르는 연출은,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은밀한 꿈속을 엿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두 주인공이 서로를 응시할 때 흐르는 묘한 정적은, 저로 하여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곧 침묵의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선택한 침묵은, 동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기 위해 선택했던 사회적 침묵과 겹쳐집니다. 결국 <타부>가 보여주는 금지된 사랑은 개인의 일탈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욕망이 식민주의라는 권력 구조와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증명하는 상징이 됩니다.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조차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공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영화 <타부>는 식민주의를 설명하지 않고, 죄책감을 정의하지 않으며, 금지된 사랑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모든 요소를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매개를 통해 제시합니다. 그 결과 영화는 역사 영화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로 남습니다. 유럽 예술영화가 가진 사유의 깊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타부>는 침묵 속에서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관객은 사랑과 역사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제 마음속에도 묵직한 돌 하나가 놓인 기분입니다.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보낸 시간의 길이를 잰다면, 그 거리는 아마 우리가 참회하며 걸어야 할 깊은 침묵의 깊이와 같을 것입니다. 사랑의 기억으로 남은 역사는 결코 아름답기만 할 수 없으며, 그 안에는 반드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진실의 조각들이 박혀 있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