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질병관리청을 꽤 오랫동안 그냥 '독감 예보 알려주는 기관'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보건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대학 동기 민석의 이야기를 곁에서 지켜보게 됐고, 그때서야 이 기관이 얼마나 촘촘하게 사람의 삶에 맞닿아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동시에, 정교해지는 정책이 어떤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이오 빅데이터가 구하는 삶, 그리고 그 뒷면
민석은 1년 넘게 병명도 모른 채 병원을 떠돌았습니다. 제가 옆에서 본 민석의 '진단 방랑'은 단순한 의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검사비가 쌓이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뭔지도 모를 병과 싸우는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끊겼습니다. 그러다 질병관리청이 지정한 희귀 질환 전문기관에서 마침내 진단을 받은 날, 민석이 "국가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느낌이 가장 큰 힘이 됐어"라고 했을 때, 저는 솔직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질병관리청의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입니다. 여기서 바이오 빅데이터란 개인의 유전체 정보, 의료 기록, 생활습관 데이터 등을 대규모로 수집·분석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희귀질환처럼 사례가 드문 경우에도 전국의 데이터를 모아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민석도 진단을 받은 뒤 자신의 사례를 연구용으로 자발적으로 공유했습니다. 자신 같은 사람이 더 빨리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바이오 데이터는 특성상 완전한 익명화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유전체 정보는 본인과 가족을 특정할 수 있는 식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이를 위해 폐쇄적 연구 환경과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승인이라는 이중 잠금장치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IRB란 연구 대상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연구 계획을 사전에 심의하는 독립 위원회입니다. 이런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있다고 해서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데이터 개방성과 보안 사이의 균형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정교하게 조율해야 할 문제이지, 한 번 갖춰졌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질병관리청은 국가건강정보포털을 통해 각종 건강 통계와 정책 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제가 직접 이 누리집을 자주 드나들며 만성질환 통계와 건강 위해 요인 조사 자료를 찾아봤는데, 방대한 데이터가 정리되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일반 시민이 읽기에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방역 딜레마: 과학이 전부일 수 없는 이유
질병관리청이 내세우는 '과학 방역'이라는 개념을 저는 기본적으로 지지합니다. 역학조사(疫學調査)란 질병의 발생 원인과 분포를 인구 집단 수준에서 분석하는 연구 방법론으로, 감염병 대응의 핵심 도구입니다. 이 역학조사 역량이 탄탄할수록 우리가 누리는 '안전한 오늘'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과학적 근거라는 것이 신종 감염병 초기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착용 지침이 뒤바뀌고, 거리두기 단계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도 그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무능이나 변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저는 그보다 질병관리청이 '불확실성을 얼마나 투명하게 소통했느냐'가 더 본질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mRNA 백신 플랫폼 기술입니다. mRNA 백신 플랫폼이란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인체에 직접 전달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차세대 백신 기술을 말합니다. 기존 백신 대비 개발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팬데믹 초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 됩니다. 질병관리청은 이 기술의 독자적 확보, 즉 '백신 주권' 확립을 핵심 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이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다만 기술 중심의 방역이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보건 불평등을 해결하는 징검다리
실제로 스마트폰 기반 예약 시스템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기술 집약적 방역은 또 다른 장벽이 됩니다. 항생제 내성(AMR, Antimicrobial Resistance)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AMR이란 세균이 항생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인류 최후의 보루를 위협하는 문제로 간주합니다. 국내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고, 가축 사육 과정에서의 항생제 남용까지 포함한 원헬스(One Health) 접근이 필요합니다. 원헬스란 사람, 동물, 환경의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합적 관점을 말합니다. WHO도 이 관점을 감염병 대응의 기본 틀로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질병관리청이 처한 딜레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이오 빅데이터 활용의 공익성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긴장
- 과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내려야 하는 행정 결정의 정당성 문제
- 기술 고도화가 역설적으로 심화시킬 수 있는 보건 불평등
- 국내 정책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항생제 내성 등 초국가적 위협
이 네 가지는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지점에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완벽한 방역은 없다는 것, 저는 그것을 민석을 통해, 그리고 보건학 공부를 통해 배웠습니다. 질병관리청의 가치는 모든 질병을 막아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위협 앞에서 사회가 인간 존엄을 유지하며 질서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이 기관의 진짜 역할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 건강조사에 적극 응하고, 정확한 정보를 찾아 판단하는 것이 보건 안보에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실천하려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보건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