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수염 진단 후 응급 수술대에 오른 날, 저는 처음으로 외과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오른쪽 아랫배를 찌르는 통증이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심해지기 전까지, 외과 의사는 제 세계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글은 환자로 수술대에 누워본 경험과 외과 레지던트 후배의 이야기를 통해 외과의 실제 민낯을 정리한 것입니다.
배를 열지 않고 고친다는 것: 복강경 수술의 원리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담당 외과 전문의 선생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에 작은 구멍 세 개만 뚫을 겁니다. 내일이면 걸어 다니실 거예요." 그 말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는데, 전신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정말로 통증은 사라져 있었고 제 배에는 작은 구멍 세 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방식이 바로 복강경 수술(Laparoscopic Surgery)입니다. 복강경 수술이란 배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 작은 구멍을 통해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삽입해 몸 안을 들여다보며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수술 공간 확보를 위해 복강 내에 이산화탄소(CO₂)를 주입하여 기복(Pneumoperitoneum)을 형성합니다. 기복이란 복강 안에 가스를 채워 장기 사이에 작업 공간을 만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 손이 들어가지 않아도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복강경 수술의 회복 속도는 실제로 빠릅니다. 수술 다음 날 병원 복도를 걷고, 사흘 만에 퇴원했습니다. 개복 수술이었다면 회복 기간이 몇 배는 길었을 것입니다. 절개 범위가 좁을수록 수술 후 사이토카인(Cytokine) 폭풍의 위험이 낮아집니다.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오히려 정상 조직까지 공격하는 현상으로, 수술 후 합병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고령 환자나 기저질환자가 수술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것도 이런 최소 침습 수술 기술 덕분입니다.
현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봇 수술(Robot-assisted Surgery)도 활발히 쓰입니다. 로봇 수술은 540도 회전이 가능한 관절을 통해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좁은 공간, 예를 들어 골반강 깊숙한 곳이나 흉곽 내부에서도 정밀한 절제가 가능합니다. 의료 기술의 진화가 얼마나 빠른지, 제가 학생 때 교과서에서 보던 '절개하고 봉합하는 외과'와 지금의 외과는 사실상 다른 학문처럼 느껴집니다.
외과 레지던트 108시간: 제 후배 성훈이의 일주일
"형, 나 이번 주 108시간 근무했어."
제 대학 후배 성훈이는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외과 레지던트 3년 차입니다. 동기들이 수련 강도가 낮고 수입이 안정적인 과를 선택할 때, 성훈이는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며 외과를 골랐습니다. 그 결정을 지금도 후회하냐고 물으면 성훈이는 웃으며 고개를 젓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내는 새벽 3시 수술실 복도 사진은 가볍게 웃어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성훈이의 일주일은 36시간 연속 근무 후 12시간 휴식, 다시 투입되는 이른바 '퐁당퐁당' 구조로 돌아갑니다. 간담췌외과 파트에서는 간암, 담도암, 췌장암 수술 하나에 8~10시간씩 서 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 시간 동안 교수님이 혈관을 꿰매는 찰나에는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성훈이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파트는 소아외과와 중증외상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신생아의 장기를 수술하거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온 환자의 배를 열 때 느끼는 중압감은 베테랑 교수님들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메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혈압이 잡히지 않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고 가족 품으로 돌아갈 때의 그 순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외과 레지던트가 수련 과정에서 습득해야 하는 핵심 술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복강경 수술 보조 및 단독 집도
- 미세혈관 문합(Microvascular Anastomosis) 기초 훈련
- 수술 후 집중치료(Surgical Critical Care) 환자 관리
- 응급 개복 및 데미지 컨트롤 수술(Damage Control Surgery) 대응
이 중 데미지 컨트롤 수술이란 중증 외상 환자에게 완벽한 수술 대신 출혈만 빠르게 잡고 배를 임시로 닫은 후, 환자가 안정되면 2차 수술을 진행하는 전략적 판단을 말합니다. 완벽함보다 생존을 먼저 고려하는 이 접근이 실제로 생존율을 높인다는 것이 임상 현장의 결론입니다.
수술할수록 적자인 구조: 외과 의사들이 버티는 이유
성훈이와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을 때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실력이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수가(酬價) 구조였습니다. 수가란 건강보험이 의료 행위에 대해 책정하는 비용으로, 쉽게 말해 의사가 특정 수술을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정해놓은 금액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목숨을 직접 다루는 수술일수록 이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병원이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기형적인 구조가 현실입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외과 계열 전공의 지원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 현상의 배경에는 낮은 수가와 높은 노동 강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그럼에도 외과 의사들이 수술실의 불을 끄지 않는 이유는 자부심입니다. 타 진료과에서 환자 상태가 너무 위중해 감당하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과가 외과입니다. "외과 불러!"라는 한마디가 모든 진료과의 최후 보루임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부심이 주당 100시간을 넘는 근무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과 수술 건수는 연간 수십만 건에 달하며, 그 중심에는 복강경과 로봇 수술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술은 진화하고 있지만, 그 기술을 쓰는 사람들을 지탱할 구조적 보완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수술실 바깥의 외과: 수술 후 몸을 다시 세우는 과정
외과 의사가 수술실 안에서만 일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수술 후 회복 관리가 전체 치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제가 퇴원하던 날 담당 선생님이 제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수술 부위 확인에서 끝이 아니라, 영양 섭취 방식과 활동 범위까지 하나하나 점검했습니다.
대수술 후 환자의 몸은 극심한 이화 작용(Catabolism) 상태에 빠집니다. 이화 작용이란 몸이 회복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근육과 지방을 빠르게 분해하는 대사 반응으로, 방치하면 수술 부위 회복이 지연되고 감염 위험이 높아집니다. 외과 의사는 이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장외 영양(TPN, Total Parenteral Nutrition)과 장내 영양(Enteral Nutrition)의 비중을 환자 상태에 맞게 조절합니다.
또한 복막염이나 복강 내 농양처럼 항생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감염의 경우, 외과는 감염 원천을 물리적으로 배액(Drainage)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으로 전신 패혈증으로의 진행을 차단합니다. 이를 패혈증의 외과적 원천 제어(Source Control)라고 합니다. 내과적 치료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서 외과가 하는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수술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외과가 '자르는 의학'이 아니라 '몸의 시스템 전체를 복구하는 의학'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외과는 수술 전 항생제 투여, 수술 중 정밀 집도, 수술 후 영양·감염 관리까지 환자의 회복 전 과정을 책임지는 진료과입니다. 메스가 닿는 순간은 그 여정의 중간 지점일 뿐입니다.
외과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본인이나 가족이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담당 외과 전문의와 수술 방식과 수술 후 관리 계획을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수술이든 집도 방식만큼이나 회복 과정의 설계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리고 그 설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외과 의사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증상이나 수술 여부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