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행복을 찾아서>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성공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7년 전 첫 사업이 무너지고 통장에 14,200원만 남았을 때, 저 역시 크리스 가드너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월세 3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240일을 버텼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이 영화는 실존 인물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바탕으로 했으며,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명의 아버지가 노숙자 신세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립니다.
노숙자 쉼터 줄을 서며 깨달은 생존의 무게
크리스 가드너는 스캐너라는 구식 의료기기를 팔던 세일즈맨이었습니다. 한 대당 250달러인 이 장비에 생활비 전부를 투자했지만 가성비가 떨어져 판매가 되지 않았고, 결국 집세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여기서 '가성비(Cost Performance)'란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지표로, 소비자가 제품 구매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아내 린다는 매일 야근하며 버텼지만 더 이상 남편의 꿈을 믿을 수 없다며 떠나버렸고, 크리스는 5살 아들 크리스토퍼와 단둘이 남게 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생존의 위협이 다가올 때 사람은 합리적 선택보다 당장의 안전을 택하게 됩니다. 린다가 뉴욕 가족의 식당 일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딘 위터 레이놀즈의 주식 중개인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 무급이며 합격률이 5%에 불과한, 현실적으로 보면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노숙자 쉼터 줄을 서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고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장면은 제가 새벽 4시 인력시장에 나가 일당 12만 원의 고된 노동을 하러 달려가던 모습과 겹쳤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전국노숙자연합(National Coalition for the Homeless)에 따르면 1980년대 미국 도시 지역의 노숙자 수는 급증했으며, 특히 가족 단위 노숙자 비율이 전체의 34%에 달했다고 합니다(출처: National Coalition for the Homeless). 크리스가 겪은 상황은 당시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셈입니다.
주식중개인 인턴십에서 본 무한경쟁의 민낯
크리스는 우연히 만난 한 남성의 스포츠카를 보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성공했습니까?" 그 남성은 주식 중개인이라고 답했고, 숫자에 밝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식 중개인(Stock Broker)'이란 투자자를 대신하여 주식을 매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금융 전문직을 의미합니다. 크리스는 그날 이후 증권사 인턴십에 지원했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면접 전날 밤 세금 미납으로 구치소에 갇혔고, 풀려나자마자 페인트 묻은 옷차림으로 면접장에 달려가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제 자존감이 바닥이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손바닥에 5개의 굳은살이 박이고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크리스는 면접관들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고, "가장 멋진 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유머로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20명의 인턴 중 한 명으로 선발됩니다.
하지만 인턴십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6개월간 무급이며 최종적으로 단 1명만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구조였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증권업계의 인턴 정규직 전환율은 평균 5~10%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 선발되었다고 합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크리스는 노숙자 돌봄 센터에서 밤을 보내고, 낮에는 회사에서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고 물을 마시지 않으며 고객 유치 전화를 돌렸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시간 관리보다 체력 관리가 더 중요한데, 크리스는 그 둘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생존에만 집중했습니다.
주요 생존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화장실 시간 절약을 위해 수분 섭취 최소화
- 노숙자 쉼터 입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퇴근 시간 조절
- 아들과 함께 지하철 화장실에서 밤을 보내며 체력 유지
어느 날 크리스는 운 좋게 연금 펀드 회사 CEO를 만나 축구 경기를 VIP석에서 관람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CEO는 크리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이 장면을 보며 저는 배려란 자신이 가진 것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화장실 바닥 위 눈물
크리스는 결국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으로 채용됩니다. 사무실을 나와 샌프란시스코 거리의 인파 속에서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장면이 제게 가장 뭉클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아이와 나눴던 36.5도의 온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제로 써보니, 성공한 사람의 이면에는 말하지 않은 수많은 고생이 숨어 있습니다. 크리스는 화장실 바닥에서 아들을 안고 울었고, 지하철 의자에서 밤을 지새웠으며, 공중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여긴 동굴이야, 공룡이 우릴 찾고 있어"라며 아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저 역시 차가운 방바닥에서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내일의 생존을 기도했던 적이 있기에, 그의 눈물이 얼마나 무거운지 압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회가 정상일까요? 대런 맥가비는 그의 저서에서 "가난은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실수할 여지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가 만약 스캐너를 도둑맞지 않았더라면,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더라면, 혹은 인턴십 기회를 몰랐더라면 어땠을까요? 제2, 제3의 크리스 가드너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미국 헌법에 명시된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라는 문구가 실은 개인의 사적 행복이 아니라 정치 참여에서 비롯되는 공적 행복을 의미했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도 떠올랐습니다. 크리스가 개인적으로 발버둥 쳤던 노력이 혹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허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자존감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는 것. 크리스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둘째, 배려란 내가 소유한 것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지, 없는 것을 억지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 셋째, 감동을 주려면 힘든 상황을 견디되 그것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0살을 바라보는 지금, 저는 성공보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않았던 희망의 온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가 아들에게 했던 말처럼, "누구도 네게 '넌 할 수 없다'라고 말하게 하지 마"라는 문장은 개인의 용기뿐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최소한의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행복은 환경과 무관하게 개인의 힘만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은 공허하고 잔인합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