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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다 속 수녀, 흑백미학, 전후사회

by insight392766 2026. 1. 15.

영화 이다 포스터

 

<이다>는 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수녀 서원을 앞둔 한 소녀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극도로 절제된 흑백의 영상미 속에 전쟁이 남긴 상흔과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침묵 속에 감춰진 역사의 무게를 담아냈습니다. 이 글은 관객의 시선에서 수녀라는 정체성, 흑백 미학의 깊이, 그리고 전후 사회의 고통을 심도 있게 반추해 봅니다.

수녀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정체성과 선택

영화 <이다>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은 수녀 서원을 앞둔 주인공 안나, 혹은 이다라는 인물의 정체성입니다. 그녀는 평생을 수도원이라는 폐쇄적이고 성스러운 공간에서 자라왔으며, 그곳은 세상의 풍파로부터 격리된 안식처이자 고립된 섬과 같았습니다. 그녀에게 수녀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그녀의 세계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을 앞두고 만난 이모 완다를 통해 자신이 유대인 '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를 감싸고 있던 견고한 성벽은 무너져 내립니다. 저는 이다가 처음으로 베일을 벗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장면에서,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정체성의 혼란이 얼마나 거대한 폭풍처럼 다가왔을지 짐작하며 숨을 죽였습니다. 그 여정은 단순히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의 내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수도원의 정적인 침묵에서 벗어나 술과 담배, 음악과 사랑이 존재하는 세속의 공기를 호흡합니다. 여기서 감독은 이다에게 강요된 운명이 아닌, 자발적인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비극을 목도한 뒤 다시 수도원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이전의 수동적인 수녀 지망생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을 지닙니다. 그것은 도망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와 세상의 추악함을 모두 응시한 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결연한 응답처럼 보였습니다. 주인공의 선택을 보며 저는 과연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타고난 혈통인지, 아니면 내가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 삶의 방식인지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흑백미학이 만들어내는 거리감과 감정

<이다>의 시각적 언어는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력합니다. 4:3 비율의 답답하리만치 좁은 프레임과 색채가 거세된 흑백의 화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에 성급히 올라타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감독은 화면 하단에 인물을 배치하고 상단의 거대한 여백을 남겨두는 독특한 구도를 사용하는데, 이는 마치 거대한 신의 시선이나 역사의 무게가 인물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저는 이 여백을 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폴란드의 비극적인 역사가 그 빈 공간 속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색이 사라진 화면은 선과 악, 혹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단편적인 진실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워줍니다. 흑백은 역설적으로 가장 화려한 색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완다의 지친 눈가에 팬 주름이나 이다의 맑은 눈망울에 비치는 흔들림은 흑백의 명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집니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인물을 쫓기보다 정물화처럼 그 자리에 머물며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미학적 접근은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고, 비극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냉정하게 관찰하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시선은 인물의 발치에 머물다가도 어느새 텅 빈 하늘의 여백으로 옮겨가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립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리고도 아름다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흑백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들을 감싸 안는 가장 정중하고도 애도 섞인 표현 방식인 셈입니다.

전후사회가 남긴 유령 같은 침묵과 개인의 상처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폴란드는 전쟁의 포화는 멈췄으나, 그 상처는 여전히 곪아 터지기 직전인 상태입니다. <이다>는 홀로코스트라는 거대 서사를 직접적으로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무너진 삶을 통해 그 참혹함을 증명합니다. 국가 검사인 이모 완다는 혁명을 위해 싸웠던 과거와 조카를 잃은 슬픔 사이에서 냉소적인 허무주의자로 변해버린 전후 세대의 표상입니다. 그녀가 마시는 독한 술과 끊이지 않는 담배 연기는 씻기지 않는 죄책감과 허무를 달래려는 가련한 몸부림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완다가 창밖으로 몸을 던지기 전 마지막으로 정돈하던 그 짧은 순간의 적막에서, 한 시대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전후 사회는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묵인하고, 누군가의 땅을 차지하며 세워진 위태로운 성입니다. 주인공이 부모님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찾아간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방어적이고 차갑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가해의 역사에 대한 공포이며, 동시에 잊고 싶은 과거에 대한 거부입니다. 그녀는 그 서늘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마주하며, 신앙이 구원하지 못한 지상의 지옥을 목격합니다. 감독은 이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두 여성을 통해 대비시킵니다. 끝내 삶을 포기한 완다와 다시 수도원의 길을 걷는 이다, 두 사람의 길은 다르지만 그 기저에는 전후 사회가 남긴 거대한 슬픔이 흐르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다가 묵묵히 걸어가던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잊히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역사적 상흔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한 수녀의 성장기를 넘어,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난도질했는지 그리고 그 파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고귀한 기록입니다. 화려한 수식이나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는 이 영화의 힘은 바로 '응시'에 있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흑백의 미학으로 정면 돌파하는 이 작품은, 침묵이 때로는 가장 시끄러운 외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저에게 <이다>는 삶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가장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위로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