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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턴과 아버지, 귀환, 화해

by insight392766 2026. 1. 9.

영화 리턴 포스터

 

영화 <리턴>은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뒤로하고 돌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는 감동적인 상봉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 공백이 남긴 깊은 상처와 서먹함,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려 애쓰는 인물들의 위태로운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가족이라는 가깝고도 먼 관계 속에서 우리가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진심과, 아프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화해의 과정을 아주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상처와 가족의 균열

영화 <리턴>을 관통하는 가장 차가운 공기는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 그가 없었던 12년이라는 세월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부재를 단순히 '비어 있음'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빈자리가 얼마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남겨진 이들의 삶을 베어내는지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12년은 한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원망을 넘어 무감각의 영역으로 넘어가기에 넉넉한 시간입니다. 영화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보다, 그가 없던 시절 가족들이 각자 고립된 섬처럼 섬세하게 균열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남겨진 가족들은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의식적으로 지워버리려 애쓰고, 남은 가족 구성원 역시 과거의 상처를 들추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안정감을 억지로 지탱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침묵은 단순히 할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더 이상 밖으로 꺼낼 수 없게 된 고형의 상처와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며 제 유년 시절의 어느 조각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의 부재가 주는 가장 큰 고통은 그 사람의 빈자리 자체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했던 감정들의 목록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서늘하게 상기시킵니다. 특히 <리턴>이 탁월한 점은 이 비극의 원인을 어느 한 사람의 명확한 잘못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지독한 원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실낱같은 이해,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막연한 기대감이 뒤엉킨 인물들의 모습은 실제 우리네 가족의 모습과 소름 끼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피해자도, 완벽한 가해자도 될 수 없는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감정의 거리는 결코 인위적인 극적 장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소통이 멈춰버린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서적 풍화 작용에 가깝습니다. 이 무거운 침묵을 견뎌내는 관객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자신만의 가족사가 투영되기 시작하며, 영화는 비로소 개인의 내밀한 고백으로 치환됩니다.

귀환이 가져온 낯선 변화와 필연적인 충돌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영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감동적인 포옹이나 눈물 젖은 사과를 선물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어색함과 차가운 공기입니다. 12년 만의 귀환은 끊어진 시간을 단숨에 이어주는 마법이 아니라, 오히려 덮어두었던 상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시금 통증을 유발하는 절개 수술에 가깝습니다. 돌아온 아버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 하며 서둘러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으려 하지만, 가족들에게 그는 이미 '피를 나눈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리턴>은 이 불편한 진실을 아주 담담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포착해 냅니다. 식탁 주위에 둘러앉은 인물들 사이의 정적을 기억합니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는 그 공간에서, 아버지의 서툰 질문과 자녀들의 단답형 대답은 그 어떤 고함보다도 날카롭게 서로를 공격합니다. 아버지는 말로써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지만,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보다 그들이 겪어낸 세월에 대한 진심 어린 응시와 기다림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라 심리적인 긴장감으로 극대화됩니다. 누군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과거의 상처가 씻겨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는 얼마나 오만한 환상인가를, 영화는 인물들의 회피하는 시선과 떨리는 손끝을 통해 증명해 보입니다. 귀환이라는 선택은 분명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영화는 그 용기 뒤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에 더 집중합니다.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보다는, 돌아온 이후 그가 감내해야 할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고단한 여정을 묵묵히 비춥니다. 이는 단순한 신파를 넘어선 현실적인 통찰입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과거를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진 폐허 위에 새로운 관계를 다시 짓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아버지가 겪는 소외감은 그가 가족에게 주었던 소외감의 거울 치료처럼 보이기도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관계의 인과율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낯선 존재를 위해 내 일상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지 영화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화해라는 이름의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

<리턴>이 제시하는 화해의 문법은 독특합니다. 화해는 마침표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의 쉼표 같은 것이며, 결코 명확한 대사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극적인 화해의 장면 대신,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서툰 진심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 이러한 사소한 행위들이 쌓여 비로소 화해의 싹이 틉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화해란 결국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로도 함께 머무를 수 있게 되는 상태'라는 점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상처는 흉터로 남겠지만, 그 흉터를 서로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용서에 가까워지는 지점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족 영화가 갈등의 해소에 초점을 맞추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려 애쓰는 것과 달리, <리턴>은 화해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앙금이 남아 있고, 내일이면 다시 사소한 일로 다툴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평화. 하지만 그 불안정함조차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소중한 진전임을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긍정합니다. 12년의 세월을 단 몇 시간의 대화로 해결하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 감독의 절제된 연출은, 오히려 이 영화를 가장 진실한 가족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느리게 흐르는 영화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들도 조금씩 유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저는 문득 우리가 타인에게 내어주는 마음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해는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내딛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리턴>은 관객에게 화해를 서두르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지독하고 지루한 과정을 견뎌낼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상대가 내미는 투박한 손길을 외면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조용히 물을 뿐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으면서도 정작 가장 타인처럼 느껴졌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말 없는 위로와 함께 깊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결국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귀환은 물리적인 돌아옴이 아니라,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의 세계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리턴>은 아름답고도 시리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