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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의 재연, 침묵의 시선, 트라우마

by insight392766 2026. 1. 13.

영화 액트 오브 킬링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집단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전통적인 증언 방식이 아닌 ‘재연’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다룬다. 이 영화는 말해지지 않은 침묵과 가해자의 시선을 통해 집단 트라우마가 어떻게 사회에 남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연, 침묵의 시선,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현대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살펴본다.

재연이라는 방식이 만들어낸 기괴하고도 불편한 진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며 시작됩니다. 보통의 역사 다큐멘터리가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을 택한다면, 이 영화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1960년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주역이었던 가해자들에게 자신들의 살육 장면을 영화적으로 재연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 기괴한 제안을 수락한 가해자 안와르 콩고와 그의 동료들은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 자신들의 학살 수법을 서부극이나 뮤지컬,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꾸며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과거의 살인을 재현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인간의 허영심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목격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연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왜곡과 권력의 자부심이 뒤섞인 기이한 퍼포먼스이자, 가해자들의 내면을 해부하는 메스에 가깝습니다. 가해자들은 스스로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신들이 저지른 피비린내 나는 범죄를 '승리의 역사'로 박제하려 합니다. 감독은 이들의 비윤리적인 태도를 비판하거나 가로막지 않고 그저 묵묵히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에게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을 선사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힘이 발생합니다. 사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었던, 폭력이 어떻게 일상이 되고 악이 어떻게 평범함의 옷을 입고 미화되는지를 재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재연 장면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피해자의 부재를 더욱 강렬하게 실감하게 됩니다. 가해자들이 웃고 떠들며 가짜 피를 묻히는 동안,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희생자의 비명은 역설적으로 더욱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하네케가 고통을 견디게 했다면, 오펜하이머는 우리를 악의 심장부로 강제로 밀어 넣고 그 악취를 맡게 합니다. 설명이 생략된 이 불친절한 재연의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결국 이 영화의 재연은 단순한 재구성이 아니라, 은폐되었던 집단적 광기와 트라우마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폭로 장치로 기능하게 됩니다.

침묵의 시선이 폭로하는 사회적 공백과 보이지 않는 폭력

<액트 오브 킬링>과 그 연작인 <침묵의 시선>을 관통하는 가장 서늘한 언어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입니다. 영화는 가해자들의 요란한 고백과 화려한 재연 뒤에 숨겨진 차가운 정적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인터뷰 중 가해자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는 순간, 혹은 자신의 죄악을 설명하다가 허공을 응시하는 그 짧은 찰나의 시선에는 수천 마디의 증언보다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영화의 후반부, 가해자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재연한 고문 장면을 모니터링하며 짓던 그 묘한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승리자의 미소 뒤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그것은 언어로 길어 올릴 수 없는 깊은 심연의 목소리였습니다. 이 침묵의 시선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확장됩니다. 학살의 주역들이 여전히 국가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 진실은 거대한 침묵 속에 매장됩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가해자들과 같은 마을에 살며 숨죽여 지내야 하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의로 둔갑시키기 위해 침묵을 강요합니다. 감독은 이 억눌린 공기를 해설 없이 긴 호흡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그 도덕적 공백을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시각적으로는 아무런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풍경일지라도, 그 기저에 흐르는 서늘한 침묵은 그 어떤 유혈 낭자한 장면보다 더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현대 다큐멘터리는 이처럼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는 예술입니다. 감독은 가해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이나, 대화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관객이 그 정적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을 단순한 관람객에서 역사의 목격자로 격상시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침묵이라는 가면을 쓴 채 여전히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악의 잔재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 침묵은 단순히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진실이 왜곡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무거운 대가이자 가장 정직한 다큐멘터리적 고발인 셈입니다.

트라우마의 현재성과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소명

흔히 트라우마는 피해자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액트 오브 킬링>은 집단 학살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가해자의 신체와 영혼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학살을 저질렀던 옥상에서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은 트라우마의 현재성을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머리로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영웅담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육체는 기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트라우마란 결국 숨길 수 없는 인간성의 마지막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 다큐멘터리는 이제 중립적인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 트라우마를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설계자가 되었습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트라우마를 직접 대면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영화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화해를 종용하는 값싼 휴머니즘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신 트라우마가 어떻게 대를 이어 전수되고, 한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을 왜곡시키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분노,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적 전이는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단 트라우마를 다루는 현대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잊힌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의 토양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경고하는 데 있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역사적 폭력이 결코 종결된 사건이 아니며,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언제든 재연과 침묵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머문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관객은 이 영화적 체험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역사적 범죄의 공범이 된 듯한 도덕적 압박을 느끼며, 비로소 고통스러운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재연과 침묵,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트라우마의 실체는 현대 다큐멘터리가 왜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영화는 끝이 나도 그 헛구역질 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돌며,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과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