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백인의 것 속 권력관계, 침묵의 서사, 타자성

by insight392766 2026. 1. 10.

영화 백인의 것 포스터

 

영화 <백인의 것>은 클레르 드니 감독이 식민주의 이후의 세계가 안고 있는 균열을 날카롭고도 우아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카메라는 인물의 내면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무거운 침묵과 찰나의 시선 속에 숨겨진 권력의 역학 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에 고여 있으며, 관객은 그 불편한 여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타자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설명되지 않은 진실이 피부에 닿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강렬한 예술적 성찰의 기록입니다.

권력관계로 드러나는 일상의 위계와 지배

<백인의 것>의 중심부를 흐르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인물들 사이에 교묘하게 배치된 권력관계입니다. 클레르 드니 감독은 물리적인 충돌이나 선동적인 대사를 배제하고도, 단지 인물들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나 서로를 응시하는 각도만으로도 거대한 위계의 성벽을 세워 올립니다. 영화는 프랑스령 카메룬을 배경으로 백인 여성 프랑스와 흑인 남성 프로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이는 단순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수 세기 동안 축적된 식민주의적 힘의 비대칭성을 상징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적인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그 숨 막히는 압박감이 마치 폭풍 전야의 정적처럼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권력은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 누군가를 부리고 관찰하는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지배 구조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들을 통해 반복되고 강화됩니다. 식탁을 차리는 손길, 명령을 내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상대의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는 시선 속에는 '나는 지배하고 너는 복종한다'는 전제가 공기처럼 깔려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백인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악한 압제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선의와 친절조차도 철저히 기득권의 위치에서 베풀어지는 시혜에 가깝기에, 오히려 그 무구함이 피지배자에게는 더 큰 폭력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프랑스가 프로테에게 보여주는 미묘한 호기심과 동경 어린 시선을 보며,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권력의 우위에 서 있을 때는 하나의 수집이나 관찰에 불과할 수 있다는 서늘한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은 대단한 음모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의 편의 뒤에 숨어 있음을 영화는 조용히 증명합니다. 클레르 드니는 이러한 관계를 비판하거나 단죄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카메라는 권력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인물들의 피부 위에 어떻게 드리워지는지를 그저 응시할 뿐입니다. 관객은 감독의 의도를 머리로 분석하기에 앞서, 인물들이 나누는 짧은 눈 맞춤에서 느껴지는 불균형한 무게감을 감각적으로 먼저 체험하게 됩니다. 권력관계가 개인의 욕망과 감정의 형태를 어떻게 비틀어놓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소리 없이 마모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은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목표로 하는 진실에 닿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결국 <백인의 것>이 보여주는 권력은 거시적인 정치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내밀한 관계 속에 뿌리내린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도 같습니다.

침묵의 서사가 길어 올린 언어 너머의 진실과 고독

<백인의 것>은 침묵이 얼마나 웅변적인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사례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이나 열망을 구태여 말로 내뱉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응시하고, 외면하며, 때로는 차가운 정적 속에 자신을 가둡니다. 이러한 침묵의 서사는 영화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대사 뒤에 숨겨진 진의를 끊임없이 추측하게 만듭니다. 저는 특히 흑인 주인공 프로테가 보여주는 긴 침묵에 압도당했습니다. 그의 침묵은 단순한 말이 없음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적 억압 아래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최후의 방어 기제이자 소리 없는 저항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있는 권력이 박탈된 자의 침묵은 그 어떤 고함보다도 날카롭게 공기를 가릅니다. 이 영화에서 침묵은 인물들 사이의 소통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응축되는 거대한 가마솥과도 같습니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금기된 욕망들이 침묵이라는 여백 속에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클레르 드니 감독은 관객에게 답을 주는 대신 질문만을 던지는 방식을 택합니다. "왜 저 인물은 저 순간에 입을 다물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서사를 완성하는 주체로 참여하게 됩니다. 저는 대사가 비워진 자리에 들리는 미세한 바람 소리나 식기 부딪히는 소리들이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심장 박동처럼 크게 들리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침묵은 설명의 부재가 아니라, 가장 정직한 감정의 노출이었던 셈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침묵의 미학은 관객을 매우 윤리적인 위치에 놓이게 합니다. 명확한 인과관계나 감정의 해설이 생략되어 있기에, 관객은 자신의 편견과 시선으로 장면을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타자를 정형화된 틀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혹은 타자의 침묵을 얼마나 오만하게 오독하고 있었는지를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침묵은 거울이 되어 관객의 내면을 비추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해소되지 않는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말로 표현된 진실은 휘발되기 쉽지만, 침묵으로 전달된 진실은 가슴 깊은 곳에 앙금처럼 남아 오래도록 사유를 자극합니다. <백인의 것>이 지닌 침묵의 서사는 그래서 단순한 연출 기법을 넘어, 타인의 고독과 실존을 대하는 가장 예의 바르고도 엄격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성이라는 시선의 감옥과 인간 존재의 소외

<백인의 것>에서 타자성은 가장 아프고도 예리한 주제 의식입니다. 주인공 프로테는 백인의 세계 안에서 철저히 이질적인 존재로 남겨집니다. 그는 백인들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관찰되고 규정되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나 주체성은 스크린 위로 온전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저는 프로테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을 따라가며 묘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호의적인 태도 기저에는 타자를 자신의 환상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나 이국적인 풍경으로 소비하려는 은밀한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구도를 명확히 하여 타자성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시각화합니다. 백인 여성의 시선은 자유롭게 공간을 누비며 타자를 탐색하지만, 타자가 된 흑인 남성의 시선은 언제나 억압당합니다. 이러한 시선의 불균형은 타자성을 단순한 차이가 아닌 권력에 의한 배제로 변모시킵니다. 저는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덧칠된 유화처럼 겹겹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타자를 향한 공포와 매혹이 뒤섞인 심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클레르 드니 감독은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진정한 이해란 타자를 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건널 수 없는 심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백인의 것>은 타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타자의 존재감을 증명해 냅니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이 영화는, 타자성이란 지워야 할 얼룩이 아니라 평생 마주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극장을 나설 때 마주한 풍경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감독이 심어놓은 시선의 파편이 우리 내면에 깊이 박혔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