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가 17개 지역에 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설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보면서, 저는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이 시스템은 장애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장애인을 관리하기 위한 것인가?" 얼마 전 성북의 한 발달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만난 활동가의 이야기는 국가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어주었습니다. 거점 병원과 재활 서비스는 늘어났지만, 정작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는 여전히 뒷전인 현실 말입니다.
의료적 모델에 갇힌 국가 시스템의 한계
현재 대한민국의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체계는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국립재활원)를 정점으로, 17개 시·도별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그리고 보건소의 지역사회중심재활사업(CBR)으로 이어지는 3단계 전달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CBR이란 Community-Based Rehabilitation의 약자로,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의미합니다. 2018년 3개소로 시작해 2022년 17개소까지 확대된 이 시스템은, 분명 과거보다 접근성이 개선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구조를 살펴보면서 근본적인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보도자료에 나열된 사업 내용은 거의 전부 검진, 재활, 진료 등 의료 서비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결함으로 보고 '치료'와 '관리'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전형적인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입니다. 의료적 모델이란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손상에서 찾고, 그것을 의학적으로 치료하거나 재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관점을 말합니다. 반면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사회의 물리적·제도적 장벽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시각입니다.
경기남부 지역의 통계를 보면 이 문제가 더 선명해집니다. 총 41만 7천여 명의 장애인구 중 지체장애가 45.3%로 가장 많고, 청각 15.0%, 시각 9.4%, 뇌병변 9.2% 순으로 분포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성남, 안산, 용인, 수원, 화성 등 5개 시만 해도 각각 3만 명 이상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순히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퇴원 후 돌아갈 집이 시설이라면, 집 밖으로 나갈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재활 서비스도 반쪽짜리 자립에 불과합니다.
탈시설과 배치되는 거주 시설 중심주의
성북의 자립생활센터에서 만난 초현 씨는 스스로를 '탈시설 장애인'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녀는 모자 공장에서 4년, 인식개선 보조강사로 8개월을 일하며 무시와 배제를 견뎌야 했습니다. "느리고 일을 못 한다"는 말을 들으며 공장에서, 사수가 업무를 가르쳐주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12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낀 곳이 바로 이 센터였습니다.
여기서 '탈시설'이란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된 생활시설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찾는 운동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예산과 인력은 여전히 장애인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거주 시설 유지에 상당 부분 투입되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적으로는 편리할지 몰라도,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선택권과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센터를 방문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직원과 장애인 직원이 서로 "OO 씨"라고 존댓말을 쓰며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보조적 존재나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던 관성이 그곳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동료'라 불렀고, 그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초현 씨는 탈시설장애인연대에서 활동하며 아직 시설에 남겨진 동료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동료 상담'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상담이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큰 치유가 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현재 정부는 2024년 하반기에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계획이 단순히 거점 병원을 몇 개 더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을 해체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섞여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탈시설 지원 체계로 예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이 아닌 재활로 치부되는 장애인 일자리
초현 씨가 전국 발달장애인 행사를 준비하며 동료들과 주제를 고민하던 시간이 가장 보람찼다고 환하게 웃을 때, 저는 그것이 단순한 직장 생활의 한 조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시설의 벽을 넘고 무시의 세월을 견뎌온 그녀에게는 생애 가장 빛나는 권리 옹호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할까요?
국가의 직업 재활 시스템은 장애인의 노동을 '생산 활동'이 아닌 '치료의 연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지급되는 임금은 최저임금 적용 예외 대상인 경우가 많아, 경제적 자립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습니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자기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단순 노동에 투입됩니다. 초현 씨가 과거 공장에서 겪었던 것처럼, "느리고 일을 못 한다"는 무시를 당하고, 업무를 가르쳐주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반면 성북의 센터는 달랐습니다. 업무에서 배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업 전체를 이해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책임감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초현 씨는 회의에 참여하며 처음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맛보았습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된 환경에서의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특성에 맞는 직무를 설계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가치 중심 일자리'의 확산입니다.
초현 씨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진짜 어려움을 이렇게 짚어주었습니다. 너무 짧은 근무 시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편견 섞인 시선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도 일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사회가 변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처럼 지금도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도 일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이 놓친 사회적 장애의 사각지대
국가 시스템은 현장의 제한된 인력과 예산 문제를 강조하며 서비스 대상자의 규모가 크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진짜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과 '태도'에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키오스크를 낮게 설치하고 경사로를 만드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도 물론 중요합니다. 배리어 프리란 장애인, 고령자 등이 생활하는 데 지장이 되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없애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동등한 동료로 인식하지 않는 직장 문화나 사회적 시선은 국가 시스템이 강제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저는 성북의 센터를 방문하며 이것을 절감했습니다. 그곳은 '피플퍼스트(People First)'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먼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당연한 진리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상식이 아닙니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거점 병원을 세우고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해도, 사람들이 장애인을 '관리 대상'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재 국가가 구축한 17개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서울남부(보라매병원), 경기남부(분당서울대병원), 대전(충남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이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 기관은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지원하고, 검진, 재활, 진료 등 거점 병원 역할을 수행하며, 여성 장애인 임신·출산 지원까지 담당합니다(출처: 국립재활원). 물리적·의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이 시스템은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시스템의 '수혜자'가 아닌 삶의 '주인공'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인식의 해체 작업을 병행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국가의 지원 센터가 의료적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탈시설을 지원하고,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며,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인식 개선에 국가 예산과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성북의 그 시끌벅적한 센터가 더 널리 알려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애는 신체의 결함이 아니라, 그들을 시설로 보내고 일터에서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장벽이라는 것, "먼저 사람"이라는 그 당연한 진리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위해, 오늘 초현 씨가 내딛는 그 위대한 발걸음을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습니다.